눈을 뜨면 그 곳은, 아, 넓고도 넓은 마을입니다. 지평선 너머로는 노을이 붉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아담하고도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같은 간격으로 이 들판을 메웁니다. 당신은 도로 위에서 깨어납니다. 그곳에 덩그러니 앉아 그렇게 노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노을을 등지고 서서 손을 뻗으며 당신을 불러옵니다. “일어나. 여행의 시작이야.” 나는, 당신은 어디서 온 걸까요.
1991년 가을. 경기 침체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여전할 것만 같던 이곳 마이애미에도 변화는 찾아옵니다. 해변에 세워지는 고급 호텔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반대로 거리에서는 클래식 머슬카를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제는 바다를 건너온 튼튼하고 경제적인 자동차들이 거리를 누빕니다. 쇠락하고 또 태동하는 산업과 삶의 터전을 떠나온 사람들이 교차합니다. PC는 그런 마이애미비치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동료들이 바에 모이면 넓은 바다를 내다보며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봐, 이 도시도 변하고 있어. 여기 왔을 때처럼 또 언젠가는 떠나야겠지. 우리는 어딜 향해 가는 걸까? 넌 어디로 갈 거야?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와 그럼에도 극복하지 못하는 침체 속에서, PC는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다고 느낍니다. 습한 바닷바람이 닿지 않는 어딘가로. 제대로 형용할 수도 없는, 당신이 있어야 할 ‘제자리’를 향해서.
늦은 밤,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건 탐사자뿐입니다. 몇 년 전 돌연 실종되었다가 고속도로에서 스무 명을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KPC의 본거지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갑작스레 실종된 KPC를 찾기 위해 이 도로를 방문한 게 몇 번인지 모르겠습니다. 번번이 허탕을 치고 포기한 지도 벌써 몇 개월입니다. 급히 도착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더라면 이 도로에 다시 방문할 일은 없었겠죠. 지직거리는 카 오디오에서 옅게 들리는 노랫소리, 앙상한 전나무 가지가 바람에 파도치듯 움직이는 소리가 전부인 고요한 도로입니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도로 탓에 상향등을 켰을 때였습니다. 눈을 깜빡한 찰나, 탐사자의 앞에는 수배지의 모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KPC가 서 있습니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형광 오렌지색 하늘 아래…… 후덥지근한 먼지 냄새가 가득한 차 안. 엔진은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고. 당신은 녹아내릴 듯한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트렁크에 실린 당신의 친구와 함께요.